'손흥민 함부르크' 태그의 글 목록 :: 인생은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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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뛰는 한국의 선수들이
가장 많이 겪는 고충은 언어문제와 식사,
그리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의 무시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러한 불의를 참고 참다가 결국은
난투극까지 가게 된 세명의
한국선수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메이저리거 박찬호입니다.

 

지난 1999년 6월 5일 LA 다저스 시절
애너하임 엔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나와
 5회 타석에서 희생번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 엔젤스의 투수 팀 벨처와
갑자기 난투극을 벌이며 박찬호는 팀 벨처에게
이단옆차기까지 날렸습니다.

 

싸움의 원인은 귀루하는 박찬호에게
팀 벨처가 명치가 아플정도로 강하게 태그하며
왜 그러냐 했더니, 오히려 빨리 꺼지라며
욕설을 하면서 비롯되었는데요

신인시절 미국에서 많은 인종차별을 겪었던 박찬호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듣고도 참고 
넘어가면 너도나도 무시하게 되고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난투극은 사건 당시 미국 ESPN에서 뽑은
최악의 벤치클리어링 5위에 뽑히기도 했는데요

이후 난투극을 벌였던 팀 벨처와는 
서로 사과를 하며 훈훈하게 화해를 했다고 하네요

 

한국축구의 캡틴 손흥민은 지난 2012년 함부르크 선수 시절
같은 팀 동료였던 슬로보단 라이코비치와
사소한 일이 오해로 번져 난투극까지 가게 되었는데요

 

라이코비치는 팀내 미니게임을 하던 중 
득점기회를 놓친 손흥민에게 다가와 
골대로 정확히 공을 차 넣으라며 
손흥민의 심기를 건드렸고
미니게임이 끝난 후 손흥민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것에 대한 자책으로 소리를 질렀다고 하는데요

 

손흥민이 자신에게 화를 냈다고 생각 한 라이코비치는 
다짜고짜 손흥민에게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하지만 민첩하게 라이코비치의 주먹을 피한
손흥민은 맞지 않았지만 뒤에 있던 손흥민의 절친
톨가이 아슬란이 주먹을 맞고 이마가 
찟어지는 부상을 입었는데요

 

절친이 부상을 당하자 화가 난 손흥민은
발차기를 하며 같이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고
둘의 싸움은 여러 동료들이 말리며
일단락 되었습니다.

 

라이코비치는 이후 손흥민과 아슬란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코치진이 그들의
곁에도 가지 못하게 막았다고 하며
화해를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억울함을 토로했는데요

라이코비치는 현재 바츠카 토폴라라고 하는
세르비아 축구클럽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손흥민이 이렇게 월드클래스 
선수가 될 줄은 라이코비치는 상상도 못했겠죠?

 

세번째 소개할 선수는 
현 MBC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인
메이저리거 출신 투수 김선우입니다.

 

김선우는 보스턴 마이너리그 시절 일본인
투수였던 오카 도모카즈와 같은 팀 동료였는데요

이 두선수는 같은 동양인 출신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초반에는 매우 절친이었다고 합니다.

 

김선우보다 1년 늦게 보스턴에 입단한 오카는
말도 안통하는 미국에서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와
김선우에게 의지하며
이런 오카에게 김선우도 룸메이트를 자청하며
많은 신경을 써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벌어진것은
오카의 김선우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는데요

 

하루는 연습시간에 오카는 
김선우에게 공을 집어 던지며
나한테 떨어져서 저쪽으로 가서 연습하라고
하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에 김선우는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았고
물을 마시러 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지만
다른 선수들이 말리는 바람에 그날은 
아무 일 없이 넘어 갔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 호텔 복도에서 마주 친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난투극을 벌이게 되었고

 

김선우의 주먹 한방으로 오카는 
실신을 하고 말았다는데요

 

이 일로 인해 오카는 몬트리올로 트레이드 되었고
김선우 역시 1년 후 몬트리올로 가게 되며
다시 한번 만나는 운명의 장난을 겪게 됩니다.

김선우의 회상에 의하면 두 선수가
싸웠다는 얘기를 듣고

 

당시 일본의 명투수였던 메이저리거 
노모 히데오와 마사토 요시는 
오카 그 놈이 잘못해서 싸운걸 알고 있다며
같은나라 선수인 오카보다 
오히려 김선우의 편을 들어주었다고 하는데요

김선우는 도대체 이놈이 어떻게 살았길래 같은 나라 
베테랑 둘 다 내 편일까 하며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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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이강인 선수의 파리 생제르맹 
입단이 드디어 확정되었는데요 

마요르카에서 PSG로 이적한 이강인 선수처럼
중소클럽에서 뛰다가 한순간에 빅클럽으로
이적한 선수들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2009년 브라질 산투스 FC에 입단하자 마자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네이마르는
단숨에 빅 클럽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에서 네이마르의 
가능성을 보고 영입을 시도하였지만
2013년 바르셀로나에 입단하였고 등번호 11번을
부여 받으며 첫해부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역 최고의 미드필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케빈 더 브라위너는 벨기에 클럽
KRC 헹크에서 프로데뷔를 하게 되는데요

2011년 헹크가 리그 우승을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브라위너는 단숨에 
빅 클럽들의 영입표적이 되었습니다.

2012년 브라위너는 빅클럽 첼시에 입단하게 되면서
꿈같은 일이 실현됐다고 당시 소감을 밝혔는데요

이후 볼프스부르크,브레멘을 거쳐 2015년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하였고
입단 첫 해 부터 맨시티 올해의 선수에 뽑히는
영광을 안으며 현재까지도 맨시티에서
그 활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리버풀의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스위스 축구클럽인
FC 바젤에서 뛰고 있던 선수였는데요

바젤에서의 엄청난 활약으로 인해 
2014년부터 프리미어리그 첼시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이후 피오렌티나의 임대 생활과 AS로마를 거쳐
2017년부터 명문팀 리버풀에 입단하며
리버풀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을 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포르투갈 출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포르투갈 클럽 스포르팅 CP에서 프로데뷔를
하며 선수생활의 그 서막을 알렸는데요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을 갖춘 호날두를
두고 리버풀과 바르셀로나 등의 빅클럽에서
영입을 시도하였는데요

하지만 호날두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2003년 맨유에 입단하게 되었고 맨유의 
레전드들이 사용하였던 7번을 부여받으며
맨유에서 레전드적인 활약을 이어 나가며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습니다.

 

 

1999년 스웨덴의 클럽 말뫼 FF에서 
프로데뷔를 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 2부리그로
강등되었던 말뫼를 1부리그로 끌어올리는 
활약을 보여주며 일순간에 명문구단들의 눈도장을

받게 되었는데요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피드와 발재간을
가진 즐라탄을 당시 아스널 감독 아르센 뱅거가 
눈여겨 보았지만 즐라탄은 아스널 대신 네덜란드

클럽 아약스에 입단하게 되는데요

아약스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인해 이후
유벤투스, 인테르, 바르셀로나, AC밀란,
파리 생제르맹, 맨유 등
수많은 명문 빅클럽들을 오가며 
선수생활을 이어가다 명예로운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선수는 한국의 박지성 선수인데요
일본 축구 클럽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데뷔를 한 박지성은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 띄어
2002년 한일 월드컵 멤버로 발탁되게 되는데요

한일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활약으로 인해
히딩크는 자신의 소속 클럽인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으로 박지성을 데려가게 되고
아인트호벤에서 초반 부진을 면치 못한 
박지성이지만 2003년부터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하였고

당시 AC밀란과의 챔스 준결승에서
박지성의 활약을 본 맨유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그의
영입을 위해 끊임 없이 접촉을 시도했는데요

당시 맨유 뿐만 아니라 리버풀, 첼시 등
다른 빅클럽에서도 박지성의 영입을 시도하였지만
결국 맨유를 택한 박지성은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라는 타이틀과 함께
현재까지도 해버지라는 닉네임으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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