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 인생은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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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14대 왕인 선조는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 하였다는
이유로 이순신을 죽이라는 전교를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내린적이 있는데

이는 이순신이 왕의 명령을 어긴것이 아니라 
일본의 요시라라는 첩자의 허위정보를 선조는 그대로 믿고
이순신에게 출정명령을 내린 것이었으며

 

 

예리한 정보 분석력으로 이 정보가 허위라는 것을 간파한
이순신은 출정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국정보다는 자신의 안위 지키기에 바빴던
선조는 이순신이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출정하지 않은것에 대해
이순신을 죽이라는 전교를 내리게 되고

 

 

일본의 간교한 술책에 넘어간 선조가 이순신을 죽이게끔 
하는게 일본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선조가 이순신을 죽이려고 하자, 조정의 대신들은 
이순신이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왕에게 말을 하지 못하였고
그때 우의정을 지낸 지중추부사 정탁이 목숨을 

걸고 선조에게 상소를 하게 된다.

 

 

정탁의 목숨 건 절실한 상소문과 더불어 류성룡, 

이원익 등의 대신들도
이순신의 처벌을 반대하며 상소하였고

 

 

나라의 안위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생각한 선조는
이순신에게 백의종군의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그치게 된다.

 

 

#이순신 #정탁 #선조 #조선간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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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조선 선조,임진왜란,노량 죽음의 바다,이순신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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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이라 평가받는 조선 제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 몇가지를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종은 셋째 아들로 태어난 세종을 왕위 계승자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자로서의 임무보다는
여러 악기를 하사하며 편안히 궁중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요

 

이 당시부터 세종은 거문고와 가야금 연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나중에는 자신의 형들에게 악기연주를 
가르쳐 줄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고기를 매우 좋아하였기 때문에
비만으로 인한 여러가지 성인병에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요

 

아버지인 태종이 세종의 건강을 염려해 운동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그의 육식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삼년상 중에는 고기를 먹을수 없지만 아들의 몸이
상할 것을 우려한 태종은 세종에게 고기반찬을
주라는 유언까지 남길 정도였는데요

 

효성이 지극했던 세종은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으나 그로 인해 입맛을
잃어 보다 못한 신하들이 고기를 드시라고 
권유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고되고 힘들어지자
세종은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의미에서
백성들과 똑같은 초가집을 지어 2년동안 살았다고 하는데요

 

세종의 건강을 염려한 신하들이 세종 몰래 초가집
더미에 짚더미를 넣어 두었다가 이를 밣견한 세종에게
큰 꾸지람을 들었다고 합니다.

 

궁에서 일하는 노비 여성이 임신 한것을 알게 된
세종은 힘든 만삭의 몸으로 일하지 않도록 
출산 전 한달의 휴가를 부여하며 독려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아이를 출산한 이후에도 100일간의 출산휴가를
부여했으며 남자 노비들에게도 부인이 아이를 출산하면
30일간의 휴가를 주어 육아를 함께 할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합니다.

 

눈이 아프면서 눈꼽이 끼는 병, 즉 안질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마저 불편함을 느끼면서 살았던
세종인데요, 그로 인해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고 합니다.

 

세종은 32년간의 재위 기간 중 약 20년 동안
시각에 의한 장애를 겪었으며 임종하기 8년 동안은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고 합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른 후 장인이었던 심온을 숙청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부인이었던 소헌왕후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여 소헌왕후가 임신을 했을때에는 건강하게 순산하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경복궁에 건순각이라는
분만실을 만들어 순산을 배려했다고 합니다.

 

세종은 신체에 장애를 가진 백성들이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멸시 당하는 것을 염려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데요

 

이에 악기연주를 할수 있는 시각장애인 중
신분이 천민인 자는 시험을 통하여 채용하도록
명 했으며 장애인 단체에는 노비와 식량을 지원해주며
장애인들의 직업훈련이 크게 도모되도록 하였습니다.

 

긴 흉년으로 나라 곳곳에서 백성들의 힘든 목소리가
들리자 왕가의 토지를 저렴한 가격에 백성들에게
빌려주었던 세종인데요

 

수양대군을 포함한 모든 대군이 소유한 토지를
대폭 줄이며 힘든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장려했다고 합니다.

 

세종은 백성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힘든 일은
무엇인지 알기위해 투표를 통하여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을 실시했는데요

 

토지법 재정을 앞두고는 약 5개월 동안 백성들을
상대로 투표를 실시하여 백성들의 민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진정으로 백성을 아끼는
애민정책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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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 연산군 10년 광기와 분노로 가득찬 얼굴을
하고 있던 연산군은 승지 강징을 불러 
지금 궁궐 내시들 가운데 고자가 아닌 자들이
고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하니 너는 지금 당장 
의원들을 대동하여 내시들을 집합시킨 후 그들의
아랫도리를 조사하여 음경이 있는 자들을 색출하라고
지사했다고 하는데요

 

갑자기 연산은 왜 이와 같은 지시를 내린 것일까요?

 

1504년은 갑자사화가 시작된 해인데요
그 해 4월 연산군의 할머니인 인수대비가 연산군의
머리에 받혀 숨을 거두면서 삽시간에 대궐은
파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연산의 생모인 폐비윤씨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고 죽은 자는 땅으로
파내어져 시신을 토막내는 끔찍한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살벌한 분위기가 계속 되던 때에
대궐에서는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잠실에서 일을 하는 한 여인이 내시 서득관과
간통을 하였다는 일이 사헌부에 접수되었고
이러한 일을 고발한 자는 다름 아닌 여인의
남편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 받은 연산은 돌연 내시들의
신체가 궁금해졌고 하여 내시들의
아랫도리를 조사하게 되는 희대의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내시들의 신체검사를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한 지 불과 보름만에 내시인 최수연이 
대궐을 출입하는 한 기생과 간통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요

 

그 무렵 연산은 살육과 더불어 전국의 기생을
매일 같이 대궐에 불러 연회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연산은 이러한 사실을 보고 받은 후 내시부 수장
김처선을 불러 요즘 내시들이 자꾸 간통사건에
연루되는데 왜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지
물어 봤는데요

 

이에 김처선은 내시들 중 일부는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욕정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하자

 

연산은 고환이 없는데도 욕정을 느낄수 있냐고
물었고 아주 어릴때 거세를 한 자들은 그 감정을
모를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 거세를 한 내시들은
사춘기에 일어나는 감정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김처선이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잠시 고민을 하던 연산은 곧 모든 내시들을
선정전 앞으로 집합시키라 명하였고
이날 근무가 없는 내시들까지 대궐앞에 모이게 됩니다.

 

모든 내시가 모이자 연산은 목소리와 얼굴이 반반한
책비를 선정하여 그들 앞에서 남녀 사이 벌어지는
음란한 책 한권을 정독하도록 하였는데요

 

이런 묘안으로 잽아낸 내시가 있었으니 바로 
김세필이라는 내시였습니다.

 

그는 김처선도 아끼는 내시였는데요
조사를 진행해 보니 김세필은 궁녀에게 임신까지
시킨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김세필은 십대 후반에 궁궐에 들어와 거세를 한 뒤
내시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거세를 한 후 얼마 뒤 다시 살아나 궁녀를
간통하게 된것이며 이러한 것을 되살이 라고 불렀습니다.

 

왕은 김세필과 그의 양아버지인 최결까지 참형에 처하고
그들의 목을 모든 내시들이 보게 하였는데요

 

이러한 일이 있은 후  내시들의 간통사건은 
어느 정도 잠잠해지는 듯이 보였지만
넉달이 지난 후 1504년 9월 조선실록에 내시들의
신체조사 이야기가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왕은 의약품을 관리하고 의원들을 뽑는 전의감 관리를
은밀히 불러 다시 한번 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는데요

 

이에 전의감 소속 내시였던 이경과 석극산이라는
내시가 처음 조사 당시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조사에서 빠진것이 확인되었으며 그들이 음근이
살아있는 내시임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이경과 석극산이 어떻게 처벌되었는지는
실록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수 없다고 합니다.

 

이외에 조선역사에 내시의 간통 사건으로 가장 
놀라운 사건은 태조 1394년 경에 일어났던 세자빈 
현빈 유씨와 내시 이만의 간통 사건인데요

 

한 나라 세자의 아내가 내시와 궁궐에서 간통을
했다는 이야기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사건이며 당시 큰
층격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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