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월드컵 득점순위' 태그의 글 목록 :: 인생은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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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축구 읽어주는 여자 DK TV입니다.
최근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도쿄 올림픽에서의
메달획득을 위해 자체 평가전을 소화하고 있는데요

 

하여 오늘 이 시간에는 대한민국 역대 A매치에서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해 보려합니다.

 

9위는 A매치 91경기에서 총 27득점을 올리고 있는 손흥민 선수입니다.

 

손흥민은 2010년 국가대표로 처음 발탁되어
2021년 현재 한국의 주장완장을 주로 차며 A매치에 나서고 있는데요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병역특례를 받기도 했으며
대표팀으로 뛰던 지난 12년동안 
27득점에 도움은 16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후반 인저리 타임 독일전에서 넣었던 
골이 아직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공동 9위는 독수리 최용수입니다.
최용수는 1995년부터 2003년까지 A매치 69경기에
출전하여 총 27점을 득점하였는데요

 

1995년 칼스버그컵 콜롬비아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득점한 이후 오랜 기간동안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지켜왔으며

 

현역 전성기 시절에는 일본에서 가장 무서워하고
부담스러워 했던 공격수로 평가받았으며
현역시절 J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하는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공동 9위 선수는 현역시절 포항제철과
할렐루야에서 주로 활약했던 공격형 미드필더
이영무 선수인데요,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짧은 7년의 대표팀 기간동안
85경기에서 27골을 득점하였고 현역 시절에는
박지성도 능가하는 역대 최고의 체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화려한 플레이는 없었지만 워낙 활동 반경이 넓고 
공격, 수비, 중원 가리지 않고 다 가담하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당시 대표팀의 굳은 일을 도맡았습니다.

 

또 한명의 공동 9위 선수는 1972부터 1978년까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97경기 27골을 넣은
김진국 선수입니다.

김진국 선수는 대표팀에서 레프트 윙으로서 
활약하며 키는 당시 대표팀에서 최단신이었으나 스피드가 
빠르고 기술이 좋았다고 평가받았는데요.

차범근의 뒤를 이어 독일에 진출한 두 번째 한국인 
선수이기도 한 김진국은 개인기로 상대를 제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크로스 하나만큼은 당시 차범근보다 
정확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6위는 1980년부터 1991년까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96경기 30골을 득점한 최순호입니다.

 

1980년 AFC 쿠웨이트 아시안컵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한 최순호는 만 18세의 나이로 7골을  넣으며 
대표팀 준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는데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전 최순호의 득점은
FIFA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1986 월드컵 TOP 10 
에서 10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공동 6위는 1994부터 2003년까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72경기 30골을 득점한 김도훈 선수입니다.

 

김도훈은 1994년 9월 13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 
바이시클 킥으로 데뷔골을 넣으면서 이후 황선홍, 최용수 
등과 함께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자리매김할수 있었는데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최종 엔트리에서 주전경쟁에
밀리며 최종 명단에 탈락하는 아픔을 겪은 후 그의 월드컵 
커리어는 다소 허무하게 마감되고 말았습니다.

 

또 한명의 공동 6위 선수는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03경기 30득점을 올린 허정무입니다.

 

1974년 킹스컵을 통해 국가대표로 발탁된 허정무는
팀 사정에 따라 중앙공격수, 레프트 윙포드,
왼쪽 미드필더까지 맡으며 팀의 전력을 향상시켰는데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전 마라도나를
걷어찬 일화가 현재까지 자주 회자되고 있으며
당시에도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며 강한 승부욕과 
체력을 바탕으로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었습니다.

 

4위는 1998년부터 2017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05경기에서 33점을 득점한 이동국 선수입니다.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
교체출전하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중거리슛과 헤딩슛을
날리며 골과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는데요

 

이후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2000년 골드컵대회,
2000년 아시안컵을 거쳐 국가대표팀에서 많은
활약을 하며 히딩크호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전엔트리 자리를
보장받는듯 하였으나

 

계속되었던 혹사와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되며 불운한 
대표팀 축구인생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본프레레호, 아드보카트호, 베어벡호, 허정무호 2기,
조광래호, 최강희호, 홍명보호,슈틸리케호,신태용호까지
모두 대표팀에 승선하며 활약하였습니다.

 

공동 4위는 1972년부터 1979년까지 58경기에서 출전하여
33득점을 올린 김재한입니다.

70년대에 활약했던 김재한은 A매치 경기당 평균 득점률이 
0.57로 대한민국 A매치 득점랭킹 순위권에서 
최고의 득점률을 보여주었는데요

 

190cm가 넘는 큰 신장을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김재한은 이러한 적극적인
플레이스타일로 인해 현역시절 세번이나 코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3위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88경기 36골을 넣은 박이천 선수입니다.

박이천은 70년대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1970년 아시안게임에서 다섯골 중 두골을 득점하며
당시 금메달을 따는데 큰 역할을 하였는데요

 

72년 차범근이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부터는 
오른쪽 윙으로 활약하며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옮긴후 당시 열린 아시안컵에서 5경기 네골을
득점하는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2위는 1988년부터 2002년까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03경기에서 50골을 득점한 황선홍 선수입니다.

 

대한민국 국대 스트라이커의 자존심이라 하면
많은 분들이 황선홍을 먼저 떠올릴텐데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으로 월드컵 무대를 처음
밟은 황선홍은 당시 고려대학교의 국가대표
수비수 홍명보를 만나면서 1990년대 한국축구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자리하게 됩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에서는 항상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준 황선홍이었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와의 조별예선에서 골을 넣으며
한국이 월드컵 본선 첫승을 하는데 결승골을
넣은 중요한 업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잦은 부상과 많은 구설수에도 황선홍은 대표팀의 
맏형으로써 그 책임을 다하며 2002년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의 옷을 반납하였습니다.

 

1위는 많은 분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국가대표
136경기에서 58골을 넣은 차붐 차범근입니다.

 

차범근은 1972년부터 1986년까지 15년 가까이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으며 1972년 이라크와의
AFC 아시안컵 경기로 대망의 A매치 데뷔를 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이 대회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끄는 활약을
보여준 차범근은 이후 78년 아시안게임과
메르데카컵에서 팀을 우승시키며 명실공히
대표팀의 에이스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차범근은 1976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 전에서 1-4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6분동안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만들며 당시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월드컵 본선 진출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경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대회였으며
아쉽게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차범근은 국가대표에서의 엄청난 활약으로 인해 
이를 바탕으로 독일에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며
독일에서도 차붐 신드룸을 일으키는 등 큰
활약을 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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