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 레전드 투수' 태그의 글 목록 :: 인생은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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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 쿠팩스는 살아있는 다저스의 레전드로 불리웁니다.


메이저리그 좌완투수를 말할때 그를 빼놓고 


얘기하는건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현재 클레이튼 커쇼를


쿠팩스의 재림이라 부를 정도로 그의 현역시절은 위대함


그 자체였습니다. 샌디쿠팩스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이름 : 샌포드 샌디 코팩스(Sanford "Sandy" Koufax)


생년월일 : 1935년 12월 30일 (83세)


국적 : 미국


신장 : 188cm


프로입단 : 1955년 브루클린 다저스 


소속팀 : 브루클린/LA 다저스 (1955~1966)



1972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


3개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가지고 있는 선수

(1959,1963,1965)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전성기를 보낸 투수



샌디쿠팩스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1951년 15세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좌완 포수로 시작했고, 


이후 1루수로 자리를 옮겨 활동했으며 본격적으로 투수를 


시작한 건 재학 중이던 라파예트 고등학교의 야구팀 코치가 


투수를 해볼 것을 제안하면서부터였습니다. 


사실 고교 시절만 하더라도 코팩스에게 있어 야구는 그저 취미로 하는 


스포츠에 불과했고 오히려 농구 선수로서 더 유명했다고 하네요.




샌디 쿠팩스의 어린시절 모습



하지만 신시내티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론 농구 선수로서 보다 


야구 선수로서 더 큰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구력은 형편없었지만 엄청난 구위를 가진 좌완 투수였던 


쿠팩스는 프로팀 스카우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제시한 연봉 6,000달러, 계약금 14,000달러란 


특급 대우에 합의하며서 프로야구 선수로 시작하게 되었죠.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샌디 쿠팩스


그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은 1955년 6월 24일에 있었습니다. 


밀워키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첫 등판을 가져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으며 


같은해 8월 27일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2피안타 14탈삼진 


완봉승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첫 승을 신고했습니다. 


뛰어난 구위에도 불구하고 해당 시즌 41과 2/3이닝 동안 


볼넷을 28개나 허용했을 정도로 제구력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소속팀 다저스가 그 해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했음에도 쿠팩스는 시리즈 내내 단 한 차례도 등판할 수 없었습니다.



샌디쿠팩스 드디어 포텐이 터지다!


몇년동안 제구력 불안으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쿠팩스는 중간중간 야구를 그만둘 위기까지 처했지만


1961시즌을 앞둔 오프시즌,한 번 더 도전해보기로 결심합니다.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그 어느 해보다 훈련에 임했고, 


그 어떤 해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에 임했습니다. 




그해 코팩스의 제구력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냈고 


본격적으로 선발진에 합류해 빼어난 성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 시즌에 기록한 탈삼진은 무려 269개로, 이는 크리스티 매튜슨의 


58년 된 내셔널 리그 기록 267개를 깨는 새로운 기록이었습니다.


1962년 시즌은 코팩스는 지난해 달라진 모습에서 더욱 발전하여 


타자들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6월 30일 뉴욕 메츠를 상대로 커리어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손바닥 동맥 부상을 진단받은 코팩스는 9월이 돼서야


다시 공을 던질 수 있었지만 부상의 후유증으로 인해 


피칭은 커녕 제대로 이닝을 소화하기도 어려운 모습을 보였주고 


결국 다저스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추격을 허용하며 


플레이오프 승부 끝에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1963년 두번째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다 그리고 사이영상 수상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진 1963년 쿠팩스를 비롯한 


메이저 리그의 에이스 투수들은 이전보다 더욱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쿠팩스의 활약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5월 11일엔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커리어 


두 번째 노히트 노런을 만들어 냅니다. 



그 해 25승, 1.88ERA, 그리고 306탈삼진을 거두며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본인 최초의 사이 영 상이자 


역대 최초의 만장일치 사이 영 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해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1차전에 


등판해, 무려 15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2실점 완투승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양키스의 요기 베라는, 처음 쿠팩스를 만났을 때 


"저런 애송이에게 25승을 헌납한 내셔널 리그 타자들은 모두 바보냐?"


라고 코팩스를 무시하는 인터뷰를 했지만 1차전의 괴물 피칭을 보고 


난 후 "코팩스가 어떻게 25승을 했는지는 알겠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는 건 대체 어떻게 5번을 진 거냐는 거다."란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쿠팩스의 활약으로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4연승이라는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시리즈 MVP는 단연 쿠팩스의 몫이었습니다.






1963년의 놀라운 활약으로 명실상부한 메이저 리그 


최고 투수에 등극한 쿠팩스 1964시즌에도 명성에 걸맞는 투구를 


했지만 그 해 4월 22일 왼쪽 팔꿈치에 통증을 느낀 코팩스는 시즌 중 


코티즌 주사를 세 번이나 맞으며 투구를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6월 4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세 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팀닥터는 쿠팩스에게 심각한 관절염을 진단했고, 에이스가 없는 


다저스는 역시 그 해 페넌트레이스 우승에 실패하게 됩니다.



부상이 그의 커리어에 발목을 잡다. 그리고 퍼펙트 게임 경기


왼팔 부상으로 인해 시즌 내내 독한 진통제를 달고 산 


쿠팩스는 경기 안에서는 부상을 참고 던지며 또 한 번 팀을 페넌트레이스 


우승으로 이끌었고,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두 번째 만장일치 사이 영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9월 9일엔 메이저 리그 역사상 8번째 퍼펙트 게임이자


자신의 첫번째 퍼펙트경기를 이루어 냅니다.



유대교의 속죄일과 등판일이 겹친다는


이유로 월드시리즈 1차전 등판을 사양한 샌디쿠팩스



당시 다저스에는 쿠팩스와 당대 최고를 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원투펀치를 구성한 돈 드라이스데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2차전 선발로 세웠지만


다저스는 1,2차전 모두 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저스는 초반 열세에도 불구 반격에 나섰고, 


코팩스는 5차전과 7차전에 등판해 두 경기 연속 완봉승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세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또 달성하며


커리어를 쌓던 쿠팩스는 1966년 11월 18일, 자신의 팔에 한계가 


왔음을 느끼고 30세의 나이로 은퇴를 발표하게 됩니다.




현역시절 쿠팩스는 폼의 변화를 통해 무슨 공을 던질지 


예측하기 쉬운 투수였다고 합니다. 이런 경향은 왼쪽 팔꿈치 


통증이 심해져감에 따라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눈썰미가 있는 타자들은 대부분 쿠팩스가 어떤 공을 


던질지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공을 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짧은 기간동안 불멸의 기록을 만들어낸 샌디쿠팩스


다저스의 영원한 레전드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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