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역사를 뒤 바꾼 전염병들 :: 인생은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728x90
반응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으로 세계 각처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데요


코로나 이전 세계에는 어떤 전염병들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350년 무렵 페스트, 즉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했습니다.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목숨을 잃을 정도로 

그 피해가 무시무시했다고 하는데요


수천만 명이나 목숨을 잃은 사태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몇 개의 국가들로 하여금 

발전의 토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질병은 림프절 페스트로 추정되는데요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자, 소작농이 

크게 줄어드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토지를 소유한 

이들에게는 노동력이 부족해진 것인데요




그러자 농업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커졌습니다. 


힘의 균형이 달라지자, 영주 소유의 땅에서 

지대를 내며 농도들이 일하던 낡은 봉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서유럽을 보다 근대적이고, 상업화된

현금 기반의 경제로 이끌었습니다.





일할 사람을 고용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에 사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기술에 투자하기 시작했는데요,


심지어 전염병의 발생이 유럽의 제국주의를 

가속화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당시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망률이 높은 전염병이 

내륙에 창궐하자, 사람들은 장거리 항해에 나서게 되었고

이것은 유럽의 식민주의 팽창을 부채질했습니다.


즉, 대규모 전염병으로 인해 경제의 현대화, 

기술 투자 증가, 해외 팽창에 대한 장려 등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이 서유럽 국가들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드는 여건 창출에 도움을 주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15세기 말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의 기후를 바꿔놓았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과학자들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유럽의 팽창이 진행된 아메리카 

지역에는 약 6000만 명이 살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식민지화로 인구가 500~600만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식민지 개척자들을 따라 들어온 질병이 

당시 사망원인의 큰 이유로 꼽혔는데요,


가장 잔혹한 질병은 천연두와 이 외 홍역, 

인플루엔자, 림프절 페스트, 말라리아, 

디프테리아, 발진티푸스, 콜레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식민지화의 결과는 엄청난 인명 손실과 

끔찍한 인간적 고통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과도 나타났는데요


살아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자, 

농사나 거주에 사용하는 땅의 면적도 축소됐으며

과거 사람들이 거주하던 땅은 자연스레 

숲이나 초원지대로 돌아갔습니다.





식물과 나무가 크게 늘자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가 

줄어들었으며 전세계 많은 지역에서 기온이 내려갔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변화가 대규모 화산 폭발, 

태양 활동 감소와 더불어 세계 곳곳에서 기온이 

떨어지는 시기의 포문을 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소빙기로 알려진 시기입니다.


이상하게도 이러한 현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중 하나는 유럽이며 당시 유럽은 엄청난 흉작과 

기근으로 몸살을 앓았다고 합니다.




아이티에서 발생한 황열병은 아이러니 하게도 프랑스를 

북아메리카에서 몰아내는 한편 미국 영토를 

넓히고 미국의 세력을 증가시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몇 차례 유럽 식민 열강에 대한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난 후 1801년,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와 

합의해 아이티를 통치해 왔는데요,


그런데 프랑스의 지도자였던 나폴레옹이 

자신을 아이티의 종신 총독이라고 선언하며 

포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무력으로 이 섬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수만 명의 병력을 보냈으며

이 계획은 적어도 전쟁터에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황열병이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병마가 휘몰아치자, 사병・장교・의사・선원 등 

약 5만 명이 사망했으며 프랑스로 돌아간 이는 겨우 

3000명 밖에 되지 않았다는 추정도 있는데요,





유럽의 군대가 아프리카에서 생겨난 이 질병에 대해 

자연 면역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군대가 패배하고 사기가 꺾인 나폴레옹은 

아이티 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를 향해 가졌던 

식민지 팽창 야망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아이티 반란 진압 임무를 시작한지 2년만에, 

나폴레옹은 미국 정부에 210만 제곱 킬로미터의 

땅을 팔아 넘겼으며 이 사건으로 미국은 

영토를 두 배로 늘리게 되었습니다.




동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질병은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화를 가속화했습니다.


이 질병은 직접적인 인명 피해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대신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1888년부터 1897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 우역 바이러스가

발생했는데 아프리카의 소 90%가 폐사하고, 아프리카 

북동부 10개국과 서아프리카, 남아프리카 등지가 

폐허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를 잃자, 기아・사회 붕괴・피해를 입은 

지역의 난민 발생이 줄을 이었습니다.




소를 이용해 농작물을 경작하던 지역의 

피해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19세기 유럽 국가 들의 

아프리카 대륙 점령을 보다 수월하게 만들어줬는데요


그들이 식민지 팽창 계획을 세우던 무렵에 

우역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1884년부터 1885년에 베를린에서 열린 회담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벨기에, 이탈리아를 

포함한 14개국이 아프리카 영토에 대한 협상을 벌였습니다.


이후 이것이 공식화되고 지도로 남게 된 것입니다.




1870년대에는 아프리카의 약 10%만 유럽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1900년대가 되자, 

유럽의 식민지가 된 아프리카 영토의 비율은 

90%까지 상승했으며 우역으로 나타난 아프리카의 

대혼란이, 유럽의 식민지 팽창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중국 명나라는 거의 3세기 동안 중국을 

통치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동아시아 광대한 지역에 

문화적・정치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는데요.


그러나 모든 것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페스트의 발발이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1641년 중국 북부에 커다란 전염병이 들이 닥쳐 

끔찍한 인명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인구의 40%가 목숨을 잃는 지역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페스트와 함께 가뭄, 메뚜기 떼도 몰려왔으며

농경지에서는 농작물의 씨가 마르자 먹을 것이 없어진 

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사망한 이들의 사체를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위기는 림프절 페스트와 말라리아의 겹합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는 아마도 북부의 

침략자들을 통해 전파되었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명 왕조를 몰락시켰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약탈자들의 공격과 함께 만주 지역에서 

조직적인 침입이 이어졌는데요





만주 지역에서 온 침입자들은 명 왕조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제국 청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 왕조는 수세기 동안 지속됐으며

당시 명 왕조는 부패와 기근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치명적인 질병은 

왕조의 운명에 마침표를 찍게 했습니다.




스페인 독감의 기원에 있어서는 여러 이견이 

많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병사들이 

귀향하기 위해 모여있던 캠프에서 발병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며, "3일 열병"이란 이름처럼 짧은 

증상기간 이후 단순한 감기 증상을 가지고 귀향한 

병사들이 각지에 전파함에 따라 유례없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세계 인구가 약 17억 명이었는데, 감염자는 

약 5억 명에 사망자는 최소 1,700만에서 최대 

5,000만에 달한다고 추정되며 사망자 수가 이렇게 

들쭉날쭉한 이유는 진단할 겨를도 없이 야전에서 

사망한 군인들과 합병증 사망자를 포함하지 

않거나 행정력 미비, 정치적 혼란 등의 이유로 

당시 제대로 된 통계가 없어 사망자를 추정할 수도 

없는 인도,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일부 연구자는 스페인 독감의 유행이 

1차대전의 종결을 앞당겼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사모아는 인구의 90%가 감염되어 30%가 사망했고, 

이누이트 마을 몇 개도 몰살의 운명을 겪었으며, 

산마리노는 이 질병 하나 때문에 

국가 멸망의 위기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 세계를 휩쓸며 맹위를 떨쳤던 

스페인독감도 총 3번의 대유행과 몇 차례의 

소규모 유행 이후 최초 발병 이듬해인 

1919년 4월 즈음해서는 어느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는데요, 어떻게 해서 종식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으나 

집단면역 형성, 유전자 변이, 검역격리와 방역의 

효과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