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명장으로 평가받던 김덕령 장군은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억울
하게 죽음을 당한 인물인데 그가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해 문헌이나 구전
자료에는 그의 출생 배경과 관련한 오묘한 이야기가 있다.

김덕령의 아버지는 주막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인물이었는데 어느 날 하루는 자신을 풍수가라
소개하는 한 남자가 주막에 머무르면서 묫자리를
보고 다녔고 김덕령 아버지에게 달걀을 하나 구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김덕령의 아버지는 풍수가에게 일반적인 달걀이
아닌 곤달걀을 주었고 풍수가는 그날 새벽 산으로
올라가 달걀을 묻고 새벽이 오길 기다렸는데 날이
새도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풍수가는 낙심
하며 산에서 내려왔고

김덕령의 아버지는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모른
척하고 있다가 풍수가가 다시 달걀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자 이번에는 멀쩡한 달걀을 주었다.
풍수가가 전날 밤 곤달걀을 묻었던 자리에 이번에는
온전한 달걀을 묻자, 그 자리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바로 그 자리가 달걀이 닭이 되는
길지(吉地)였던 것이다.

풍수가는 김덕령의 아버지에게 은덩이를 건네주며
몇달 후 다시 와서 은덩이를 더 줄테니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하고 떠나게 되고 풍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김덕령의 아버지가 그 자리를 보더라도 그 자리는 뛰어난
명당자리임이 느껴졌고 풍수가가 떠나자, 김덕령의 아버지는
그 묫자리에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게 된다.

몇달 후, 다시 돌아온 풍수가는 자신이 알아놓았던 묫자리를
찾아갔지만 누군가 이미 묘를 쓴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자리를 자신에게 양보할 것을 요청했지만
김덕령의 아버지는 이를 거절하였다.

풍수가는 양보를 안해도 좋으니까 묫자리의 안대(案帶)가
틀렸으니 자신이 바로 잡아 주겠다고 했지만 그가 괜한
해코지를 한다고 생각한 김덕령의 아버지는 그것마저
거절하고 마는데 설화에는 그 묫자리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후에 태어난 김덕령이 제대로 뜻도 펴보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게 되었다고 하며 묫자리의 안대(案帶)는
틀렸지만 그 명당자리에 김덕령의 할아버지를 묻었기에
김덕령과 같은 뛰어난 인물이 태어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덕령의 용맹은 실로 대단하여,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백 근의 철퇴를 양 허리에 차고 다녔으며 왜장은 김덕령의
얼굴만 보고도 두려워서 군대를 철수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김덕령은 용력이 있으면서도
출전하지 않았다는이유로 나라에서 그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고 했으나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는데
김덕령은 “나를 죽이려면 ‘만고충신 효자 김덕령’이란
비를 써 달라.”고 요구하였고 “내 다리 아래의 비늘을
뜯고 그곳을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로 세 번
때리면 죽는다.”고 알려 주어 그렇게 하자 김덕령은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덕령 장군은 죽은 후, 1661년 현종2년에 관직이
복구되고 1668년 병조참의에 추증되며 그 누명이
풀리게 되었는데 지금의 광주 충장로는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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